노래 따라 부르고 떼창까지
객석 열기 콘서트 방불케해
밴드 사운드 몰입감도 강점
'이터니티' 등 잇단 연말 무대

'트레이스 유' 공연에서 배우 선우가 노래하고 있다. 더웨이브
반짝이는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라이브 밴드 연주에 맞춰 무대에서 함께 뛰어오르는 출연자들. 콘서트가 아니다. 대학로를 점령한 소극장 록 뮤지컬 커튼콜 풍경이다.
올해 공연계는 록 사운드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대극장에서는 브로드웨이 대표 록 뮤지컬 '렌트'가 10번째 시즌으로 돌아와 관객을 모았고,중극장 창작 뮤지컬 '홍련'은 중국 상하이 진출을 성사시키며 한국 록 뮤지컬의 해외 확장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대학로에서는 '보이스 오브 햄릿: 더 콘서트' '쉐도우' '트루스토리' 등 신작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으며,글램록을 차용한 '이터니티'와 록밴드 보컬의 이야기를 담은 '트레이스 유'가 연말 대미를 장식한다. 라이선스 대작부터 창작 작품까지 서로 다른 계보의 작품이 한 시즌 안에서 동시에 주목받으며 록 뮤지컬은 올해 공연계를 대표하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애초 록은 뮤지컬과의 접점이 많지 않았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1968년 '헤어',1971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등장하기는 했지만,주류는 클래식·재즈·오케스트라 등 전통적 음악이었고 지정석에 앉아 조용히 감상하는 보수적 관람 문화 역시 견고했다. 록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은 2000년대 이후에야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들어 '록 햄릿' '마마,돈 크라이' 등이 연달아 등장하며 록 뮤지컬 기반이 점차 넓어졌다.

'이터니티' 공연에서 배우 변희상이 글램록을 부르고 있다. 알앤디웍스
최근 창작 록 뮤지컬은 록을 단순한 음악적 장식이 아니라 작품 구조의 핵심으로 활용한다. 4일 막을 올리는 '이터니티'는 1960년대 글램록 스타 블루닷과 그를 동경하는 현재의 카이퍼가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음악을 통해 교감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3년 초연 이후 27일 7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트레이스 유'는 클럽 '드바이'를 배경으로 록밴드 보컬 구본과 클럽 주인 이우빈의 관계를 다룬다. 다중인격 서사를 록 콘서트 양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특징. '홍련'은 씻김굿 의식과 록의 폭발성을 결합해 억압된 목소리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인 '쉐도우'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기까지의 열흘을 타임루프 구조로 재편했다. 1762년 7월 3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진 비극적 시간을 '옥추경'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사로 구성하고,사도세자의 내면 균열은 록 발라드와 사이키델릭 록 등 실험적 사운드로 구현했다. '보이스 오브 햄릿: 더 콘서트'는 유령이 된 햄릿의 내면 갈등을 콘서트형 무대로 재해석해 분열된 자아를 록 음악의 질감으로 입체화했다.
관객들이 록 뮤지컬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장감'과 '해방감'이다. 숨소리마저 조심해야 하는 이른바 '시체관극'과 달리,록 음악이 중심이 되는 무대에서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고 호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생생한 밴드 사운드는 특히 무대와 좌석의 거리가 짧은 소극장에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록 뮤지컬의 특징 중 하나는 관객의 적극적 참여다. 커튼콜 차례가 되면 자연스레 앙코르와 떼창이 이어지고,'백작' '트루스토리' 등 일부 공연에서는 앙코르용 응원봉을 공식 굿즈로 판매하기도 한다. 응원봉을 든 관객과 배우가 함께 뛰며 노래하는 장면은 이제 한국 록 뮤지컬의 고유한 관극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유행을 넘어 창작 생태계와 관객 문화의 변화를 보여준다. 한 뮤지컬 평론가는 "록 뮤지컬은 해외에서 들어온 장르이지만 대학로 특유의 2~3인극 중심 제작 구조와 배우·관객의 근거리 상호작용,밀도 높은 사운드 환경과 만나 자생적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