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류품 공매 실익 따져보니
미술품·귀금속·고가주류 등
온라인 공매로 국고 귀속돼
시간 지날수록 값어치 올라
‘리셀 재테크족’ 시선 집중
낙찰가가 곧 구매가는 아냐
18% 수수료에 10% 부가세
시세대비 수익 꼼꼼하게 체크

6일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국세청 경매 프리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승환기자] 지난 3월 6일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1층. 이른바 ‘국세청판 블랙프라이데이(블프)’가 열렸다. 국세청은 거액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고액체납자들의 가방·시계 등 명품과 그림 위주의 예술품 76점을 이곳에 전시했다. ‘블프’는 11월 넷째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 날로,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쇼핑이 이날 이뤄진다. 쇼핑 주체가 국가이다 보니 명품 공매(법원일 경우 경매)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이날 오전부터 이 센터는 참관객들로 북적였다. 에르메스 버킨백과 롤렉스,유명 화가의 그림에 대해서는 한바탕 가격 논쟁이 펼쳐졌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 국세청이 온라인으로 명품을 매각해왔지만 현장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반차를 내고 왔다는 한 참관객은 “부자들이 손에 차고,들고 다녔던 명품들을 반값에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여기에 왔다”며 “생각보다 입찰 경쟁이 치열해 놀랐다”고 말했다.
현장 전시를 발표한 이후 서울옥션 전화통은 그야말로 불이 났다. 이준기 서울옥션 브랜드기획팀 선임은 “2분에 한 번꼴로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며 “현장에 와서 꼭 실물을 확인해보고 결정하시라고 응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오후 2시까지 누구나 공매에 참여할 수 있지만 입찰 가격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명품 상태를 확인해야 막상 낙찰받고 후회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현장은 흡사 서울옥션 홈페이지 온라인 입찰 화면을 현실로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상품이 있고,옆에 상품 추정 가격과 공매 시작 가격이 적혀 있다. 지하 1층 안내데스크 입구 쪽엔 온라인으로 공매 입찰 현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실제 입찰 화면에는 최종 낙찰까지 남은 시간과 현재 경합 상황(응찰 숫자)이 표시돼 있다. 이날 오후 1시 현재 응찰 기준 공동 1위(50회)는 검은 가죽 토트 샤넬백(가로 35㎝·높이 22㎝·폭 13㎝)과 구사마 야요이의 ‘플라워 가든(Flower Garden)’ 스크린프린트다. 응찰 횟수는 예비 낙찰자의 이름이 입찰 시작 하루 만에 50번이나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 샤넬백이 에르메스 버킨백을 제치고 유독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낮은 시작가다. 공매 시작가가 70만원에 불과했다. 이론적으론 70만원에 입찰해놓고 이후 응찰이 없으면 그 가격에 샤넬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온라인 공매 화면에 현재가 830만원이 찍혀 있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가격이면 이미 시세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버킨백 중 최고 인기 상품은 ‘에르메스 버킨 30 골드 하드웨어(금장)’였다. 온라인 입찰상 47번의 손바뀜이 있으면서 현재가 1900만원을 넘었다. 시작가가 고작 300만원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명품 거래 사이트 ‘더리얼리얼’ 기준 최상급 시세는 약 2600만원이다.
그러나 낙찰가가 곧 구매 비용은 아니다. 국세청 공매 물품을 구매하려면 온라인 낙찰가에 구매수수료(낙찰가의 18%)·부가가치세(구매수수료의 10%) 등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총액은 약 2276만원이다. 현 낙찰가만 내면 재판매자(리셀러)는 700만원을 얻는데,비용까지 감안하면 그 수익이 300만여 원으로 감소한다.
그렇다면 현 시세와 가깝게 많은 돈을 주고 공매 상품을 굳이 사는 심리는 무엇일까. 업계에선 체납자들이긴 하나 한때 부자들의 소장품이면서 정부(국세청)와 서울옥션이 ‘더블 정품 인증’을 했다는 장점,판매대금이 국고로 귀속돼 스스로 애국한다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이 같은 명품 재테크족 입장에선 가방보다는 그림이 낫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인기 여성 가방의 경우 환금성은 좋지만 경쟁이 치열해 장기적으로 큰 시세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술품의 경우 낮은 추정가 대비 시작가가 적게는 20~30%,많게는 절반 이하까지 낮게 잡혔다.

수석 경매사인 정태희 서울옥션 경매사업팀장은 “추정가 자체도 보수적으로 책정했는데,시작가는 통상적인 정기 경매보다도 훨씬 매력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출품작 면면을 살펴보면 메이저 경매에서 볼 법한 거장들의 대작이 눈에 띈다. 가장 주목받는 원화 작품은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김창열의 ‘회귀’다. 천자문을 배경으로 영롱한 물방울의 대비를 구현한 수작이다.
3500만~7000만원의 추정가에도 시작가는 2000만원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창열 회고전이 열린 후 작가의 작품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25년 10월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는 ‘완판 행진’을 이어간 바 있다. 이날 ‘회귀’에 응찰 35건으로 현재 가격이 4200만원에 도달했다.
달항아리를 그린 최영욱의 ‘카르마(Karma)’도 수집가(컬렉터)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변형 120호 크기의 대형 원화로,도자기 표면의 미세한 빙렬을 통해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정가는 5000만~1억원 사이이며 시작가는 3500만원으로 책정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변형 120호 크기의 ‘Karma’는 71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같은 달 변형 50호 크기의 동명의 작품은 3700만원에 거래됐다. 최근 낙찰가와 비교하면 해당 출품작의 시작가는 낮은 수준에서 시작한다는 분석이다.
한정판으로 제작된 작품을 향한 열기도 뜨겁다. 이날 오전까지 50회 응찰이 이뤄진 구사마 야요이의 Flower Garden도 여기에 포함된다. 35점의 한정판 에디션으로 제작된 줄리언 오피의 ‘Tina Walking’,데이비드 호크니의 한정판 작품 ‘A Bigger Book’도 모두 현장과 온라인 입찰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날 남성 관객들은 환금성이 높은 ‘롤렉스’에 몰렸다. 금빛 장식이 화려한 ‘데이토나’ 제품에는 추정가 최고액(2000만원)을 훌쩍 넘어 현재가 2750만원을 찍었다. 공매 현장에 전시된 시계 중에는 최고 응찰 횟수(47건)를 기록했다. 현 시세가 2900만원에서 4000만원까지 호가해 경쟁 여지는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현장 전시 76점에 주류 각병까지 포함하면 166점이 1차 국세청 블프에 나왔다. 2차 국세청 공매도 남아 있으니 여유를 가질 필요도 있다. 1차 온라인 상황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어서다. 2차 공매 물품 현장 전시 일정은 이달 20~24일이다. 1차 때보다 2배 이상 많은 326점이 전시된다. 2차 온라인 입찰 마감은 같은 달 2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