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뒤흔든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

Nov 26, 2025 IDOPRESS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특별전'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김구림·이강소 등 거장 36인사진 기반 실험적 작품 집대성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특별전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김구림·이강소 등 거장 36인


사진 기반 실험적 작품 집대성

김구림의 '불가해의 예술'(1970)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발터 베냐민은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사진이 단순한 기록 매체가 아니라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을 지닌 매체라고 규정했다. 그는 사진을 인간의 눈이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현실의 소외된 모습을 기계적으로 포착하고,이를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사회적 관습에 균열을 낸다고 봤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특별전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 같은 사진의 변혁적 가능성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어떻게 실현됐는지 집중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한국 현대미술계에 지속적인 전환을 이끌어온 사진 기반 실험을 조망하는 대규모 전시다. 한국 작가 36명의 작품 200여 점,자료 10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와 실험을 이끈 숨은 매체가 사진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진은 회화,판화,조각,설치 등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의 매개이자 새로운 형식을 생성하는 출발점이 됐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개별 작가나 시기별로 단편적으로 논의되던 사진 실험의 흐름을 통사적으로 정리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만영의 'Paper work'(1982)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전시장에는 최초 공개되는 미발표작과 수십 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희귀 자료가 대거 포함됐다. 김명희가 1970년대 신체를 감광지에 직접 밀착해 햇빛으로 노출해 만든 포토그램을 재촬영해 구성한 신작 'Liminal 3'이 처음 선보인다. 당시 사진과 신체,빛의 관계를 실험한 과정을 오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이강소의 이중 포토세리그래피 '무제'(1979)는 사진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중첩한 작업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정동석의 '서울에서'(1982)는 5·18 광주의 현실을 직접 재현하는 대신 은유적 이미지로 기록한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 광화문 일대 국정홍보판이 비어 있는 장면을 포착해 신군부 체제의 억압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전라남도' 게시판 앞을 경찰이 지나가는 장면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1970~1980년대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도 다시 조명된다. 김용철의 '포토페인팅_신문 보기,신문 버리기'(1977)는 당시 신문을 활용해 유신체제의 정치·언론 통제를 퍼포먼스 형식으로 비판한 작업이다. 작가집단 서울'80의 김춘수,서용선,이인현의 슬라이드 작업을 비롯해 문범과 안규철의 사진 실험,안창홍의 포토콜라주 등이 40~50년 만에 다시 공개된다.


한국 실험미술 대표 작가 김구림의 작업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의 '불가해의 예술'(1970)은 잡지 '라이프(LIFE)'에서 차용한 사진 이미지 위에 콜라주 작업을 한 뒤 이를 '공간' 1970년 5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아폴로호가 착륙한 달 표면에 '입산금지' 팻말을 세운 장면을 구성해 냉전기 우주 경쟁의 상징이던 이미지를 유머와 풍자로 비틀었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정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