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 공습에 앤스로픽의 AI 모델 ‘클로드’를 활용했다. [매경DB] 지난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마주한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 ‘MWC26’의 풍경은 그간 전해 듣던 화려한 축제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혁신의 환호보다 긴박한 위기감이 먼저 읽혔다. 현장은 ‘AI가 어떻게 실질적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를 입증해야 하는 엄중한 시험대 같았다. 전시장 곳곳에선 기술적 과시보단 사업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기업들이 많았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열기보다 강렬했던 건 곳곳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였다. 미·이란 분쟁으로 영공이 막히자 주인을 잃은 중동 기업의 부스들이 텅 빈 채 남겨졌고,행사장 인근에선 전쟁을 규탄하는 반전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기술이 결코 안보와 지정학이라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존 지우스티 GSMA 최고규제책임자(CRO)가 기조연설에서 전 세계적인 규제 파편화와 지정학적 긴장을 언급하며 ‘디지털 회복탄력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 이제 ‘디지털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시스템을 복구하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선다. 외부의 어떠한 충격에도 국가의 지능이 멈추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즉 ‘소버린 AI(주권 AI)’를 갖추는 것이 본질이 됐다. 최근 중동 전쟁에서 민간 AI가 살인 무기 제작이나 전략 수립에 오용되고 있다는 소식은 이 논의에 무게를 더한다. 외산 AI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가는 타국의 전쟁 수행이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인프라가 한순간에 마비되거나 원치 않는 윤리적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만의 지능을 갖지 못한다면 미래의 주권 역시 타국의 선의에 맡길 수밖에 없다. MWC 현장에서 만난 국내 AI 기업들이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의 디지털 방어망 구축은 단 하나의 ‘천재 모델’을 가려내는 수능 시험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다양한 자국산 특화 모델들이 상호보완하며 발전하는,건강한 생태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파모가 개별 기업의 성과에 머물지 않고 소버린 AI라는 국가적 대업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일관성 있는 지지와 정책적 인내가 뒷받침돼야 한다.
[고민서 디지털테크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