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방불케 하는 빠른 전개로
진실 위협하는 AI 문제점 다뤄

연극 ‘빅 마더’에서 거대한 대중 여론 조작 알고리즘의 뒤를 캐는 ‘뉴욕 탐사’ 소속 기자들의 모습. 세종문화회관 100분 동안 58개의 장면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유튜브 쇼츠를 방불케 하는 빠른 전개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AI)이 진실을 위협하는 미디어 환경을 다룬 프랑스 연극 ‘빅 마더’가 지난 3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빅 마더’는 대선을 앞둔 혼란스러운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정치 혐오를 등에 업고 의회 해산을 내세우는 포퓰리스트 정당이 득세하는 가운데,갑자기 공개된 현직 대통령의 성추문 영상이 큰 파문을 일으킨다. 이에 ‘뉴욕 탐사’ 기자들은 영상의 진위 여부를 추적하는 도중에 단순한 정치 스캔들 너머 전례 없는 규모의 대중 조작 프로그램과 마주하게 된다.
거대 권력에 맞서 진실을 쫓는 기자들의 이야기는 무대와 스크린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다뤄져 왔다. 다만 ‘빅 마더’는 여론 주도권이 TV에서 스마트폰 속 소셜미디어로 이동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막장 드라마,포퓰리스트 정치인의 호소력 짙은 연설,AI로 제작된 가짜 영상 등 동시대의 스크린 속 콘텐츠를 무대 위에 직접 구현하는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작품 제목인 ‘빅 마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해 감시와 통제의 대명사가 된 ‘빅 브라더’를 비튼 표현이다. 노골적이고 강압적인 방식 대신 편안하고 익숙한 ‘엄마’ 같은 방식으로 대중 조작이 이뤄지는 현실을 꼬집는다.

연극 ‘빅 마더’에서 뉴욕 탐사보도팀 편집장 오웬 역의 조한철 배우. 오웬은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애쓰는 인물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준우 서울시극단장은 30일 전막시연 후 인터뷰에서 “최근 본 희곡 중 가장 장면 수가 많고 호흡이 짧게 전개되는 작품이었는데,지금 우리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과 데이터,알고리즘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58개 장면이 빠르게 교차하는 산만한 구성 역시 특징이다. 이 단장은 “스마트폰을 통해 무언가를 알아보려 할 때 어느새 딴 데로 빠져 있고,뭘 찾다 보니 맥락을 잊는 경험이 일상에서 반복되지 않느냐”며 “그 산만함 자체가 공연의 경험으로 작동하길 바랐다”고 했다.
프랑스 출신 작가 멜로디 무레는 현대 사회의 이슈를 예리하게 포착하면서도 동시대적 형식으로 풀어내는 데 주력해 온 극작가다. ‘빅 마더’로 2023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최우수 작가상·최우수 연출상·최우수 시각창작상·최우수 여우조연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뉴욕 탐사보도팀 편집장 오웬 역에는 묵직한 카리스마로 정평이 난 조한철과 유성주가 더블캐스팅됐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는 빠른 전개 속에서도 작품에 무게를 더한다. 연극은 다음 달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